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릭 로메르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[[장뤽 고다르]]가 "누벨바그 감독 중 가장 교양이 있는 사람"이라 부를 정도로 우아하고 박식했다고 한다. 문학을 사랑해 날마다 시를 읊고 다녔으며, [[철학]]적 사색과 담론을 끊임없이 즐겼고, 감독 데뷔 후엔 [[건축]] 등을 연구하여 자기 영화 스타일과 접목시키기도 하였다. 또 차분한 사교성을 지녀,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능도 있었다고. 그래서인지 영화를 촬영할 때 출연하는 배우들과 촬영 이전부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많이 쌓았다고 한다. * 사생활과 작품 활동을 __철저하게__ 구분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. 영화 소재로 가끔 [[불륜]]을 사용했어도, 로메르 본인은 결혼생활에 매우 충실했으며, 공{{{-2 ([[公]])}}}과 사{{{-2 ([[私]])}}} 구분이 너무나 철저해 로메르와 함께 일한 관계자들도 로메르의 [[장례식]]이 돼서야 로메르의 부인과 자식들을 알았다고 한다. * 사생활도 매우 절제되고 규칙적이었다. [[중년]]엔 매일 5km씩 [[조깅]]하였고, 평생동안 [[자동차]] 없이 [[대중교통]]으로만 다녔으며, 영화를 찍을 때에도 최대한 인력을 줄이고 예산을 아끼는 방향으로 찍었다. 이 같은 절제된 습관으로, 경력 중반부터는 스태프 3~4명만 대동하고 영화를 찍는 경지에 도달해서, [[지나가는]] 사람이 보면 영화 찍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고. * 존경하는 감독으로 [[앨프리드 히치콕|히치콕]], [[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|무르나우]], [[하워드 혹스]] 등을 꼽았는데, [[평론가]]들은 개중에서 하워드 혹스와 가장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판단한다. 실제로 로메르 영화는 스크류볼 코미디의 재해석이라는 평이 많다. * 누벨바그 감독 중에서 가장 __비(非)정치적__이었는데, 평생 동안 딱 한 번 정치활동을 해본 게 [[생태주의]] [[정당]]인 [[녹색당]]을 지지한 것 뿐이라고 한다. 이 때문에 누벨바그 세대에게 "로메르는 [[68운동]]에 참가했나 안했나"가 논쟁거리가 된 적도 있는데, 로메르는 직접 "참가했다"라고 밝혔다. 근데 정치적인 이유로 참가한 게 아니라, 길거리로 나와보니 《[[카예 뒤 시네마]]》 직원들이 보여서 그냥 같이 걸은 거라고(...). * 이 밖에도 우파 잡지를 구독했다고 인증했다는 점, 〈[[영국 여인과 공작]]〉에서 드러난 [[프랑스 혁명]]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[* 이 영화에서 프랑스 혁명은 통제불능 난장판으로 묘사되고 반대로 주인공이 소속된 왕당파는 품위있게 다뤄진다. 이런 까닭에 프랑스 내에서는 공개 당시 비난을 받았다.]으로 인해 좌파보다는 우파적 가치관에 기울어져 있는거 아니냐는 얘기가 종종 나온다. 어지간해서는 정치 언급을 안하는 [[앙드레 바쟁]]조차도 "로메르는 좌파가 아니다"라고 한 마디 했을 정도. * 이 같은 비정치적 성향 때문에 한동안 《[[카예 뒤 시네마]]》와 결별해야 했다. 특히 [[1960년대]] 들어서 더욱 급진적으로 변한 《카예 뒤 시네마》는 로메르와 맞지 않았고, 논쟁 끝에 자크 리베트가 끼어들어 로메르를 편집장에서 억지로 끌어내는 사태도 있었다. 심지어 [[1970년대]] 말에 《카예 드 시네마》는 "로메르 영화를 반대한다"라고 디스 하고 한동안 다루지 않았을 정도. 상기한 사건 때문에 자크 리베트하고도 잠시나마 소원했는데, 리베트의 〈아웃 원〉에 카메오 출연하면서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다. 시간이 지나 《카예 뒤 시네마》 연간 리스트에 로메르의 영화가 포함되면서, 정치적인 갈등은 지나간 일이 되었다. * 생전에 지면 인터뷰는 자주 했으나 영상 인터뷰는 거부했는데, 별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카메라 앞이 부끄럽고, 무엇보다 유명해지기 싫어서 였다고 한다. (로메르가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했다는 점을 상기하자) 로메르가 총애했던 배우 마리 리비에르[* 〈비행사의 아내〉, 〈[[녹색 광선(1986)|녹색 광선]]〉, 〈[[가을 이야기]]〉 주연 배우]가 말년의 로메르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려고 했을 때도, "스탭 없이 혼자 촬영할 것"이라는 조건을 내걸었을 정도. * 유명세를 싫어하는 성향 때문인지 예명인 '에릭 로메르'로 활동했는데, 자신이 존경하는 감독 '[[에리히 폰 슈트로하임]]{{{-1 (''Erich von Stroheim'')}}}'의 앞이름과 작가 '색스 로머{{{-1 (''Sax Rohmer'')}}}'의 뒷이름을 조합해서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. * 특기할 만한 점으로, 누벨바그 감독들 가운데 유일하다시피 종교심이 깊은 사람이었다.[* 다른 감독들도 종교적 테마엔 관심있었지만, 개인적 종교심이 깊진 않았다.] 평생 독실한 [[가톨릭]] 신자였으며, 학창 시절엔 부전공으로 [[신학]]을 배웠다고 한다. 영화에 미신, 점술, 특이한 자연 현상 등이 등장하지만 감독 본인은 그저 영화적 요소로서만 사용했다고 한다. * [[홍상수]]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다. 실제로 로메르와 홍상수는 작업방식과 연애를 주된 소재로 삼는 특징이 매우 닮아있어, 혹자는 홍상수를 "한국의 에릭 로메르"라고 부르기도 한다. 허나 공통점만큼 차이점도 많아 대놓고 부르지는 않는 편. * 프랑스에선 [[프랑수아 오종]] 감독이 로메르를 존경하고 뒤따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. 그만큼 프랑수아 오종은 자신의 영화에서 로메르에 대한 [[오마주]]를 자주 하는데, 대표적으로 로메르의 〈[[여름 이야기]]〉 시작 장면과 오종의 〈레퓨지〉 결말 장면이 있다. 참고로 〈레퓨지〉에 등장하는 멜빌 푸포는 〈여름 이야기〉의 주연 배우이기도 하다. 또한 오종 감독의 2020년 영화 〈썸머 85〉도 로메르가 연상된다는 평을 받았다. * 홍상수와 오종 외에도, [[미아 한센 러브]]의 〈[[다가오는 것들]]〉, [[루카 구아다니노]]의 〈[[콜 미 바이 유어 네임]]〉, [[리처드 링클레이터]]의 작품들, [[하마구치 류스케]]의 〈[[우연과 상상]]〉, 기욤 브락의 〈[[다함께 여름!]]〉, 샬린 부르주아 타케트의 〈[[아나이스 인 러브]]〉에서 로메르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. * 그렇게 어려운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지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에 한국 [[시네마테크]]에서 인기가 좋은 편이다. [* 한국 시네마테크 계열에서 인기가 좋은 감독으로는 [[에드워드 양]], [[아녜스 바르다]], [[테오 앙겔로풀로스]], [[페드로 알모도바르]], [[아키 카우리스마키]], [[안드레이 타르콥스키]], [[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]] 정도가 꼽힌다.] 로메르 회고전이 열렸을때 인기작들은 전부 만석 매진되었을 정도. 주로 〈[[녹색 광선(1986)|녹색 광선]]〉으로 생긴 팬덤이 많은데, 덕분에 [[서울아트시네마]]는 로메르 영화를 구입해 심심할때마다 틀어줬다. 2023년에는 서울아트시네마 쪽 판권이 만료되었는데, 그새 [[안다미로 필름스]]가 구매해서 회고전을 열었다. --사골-- 다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로메르는 국내에 크게 소개되지 않은, 미지의 감독이라고 인식되었다고 한다. 고전이지만 현 세대 영화팬들에게 접근성이 더 좋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